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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18일 가수 종현이 자신의 결정으로 생을 마감한 직후, 세상은 그 결정의 이유를 넘겨짚고 추측하는 이들의 말로 가득했다. 그가 쓰고 남긴 노랫말들에 징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 그와 소속팀 샤이니에 가해졌던 여러 가지 비판 때문에 그가 상처를 입었을 거라며 탓할 상대를 찾는 사람,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기록인 폐회로텔레비전 카메라 화면을 단독이랍시고 보도하는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난 종현이 가수 이하이를 위해 만들어준 곡 ‘한숨’(2016)의 후렴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종현은 누군가를 위로할 때조차 윤리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한숨’의 후렴에서, 화자는 섣불리 “내가 당신의 고통을 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화자는 자신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상대의 고통을 안아주겠노라 말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고통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물며 곁에 없는 이의 고통을 우리가 넘겨짚어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법은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는 온전히 그만의 것이 된 종현의 어둠을 함부로 예단하는 게 아니라, 종현이 사람들에게 남기고 간 빛을 기억하려 한다. 


“당신의 한숨, 이해할 수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노래로 대중을 위로할 때조차

‘윤리’ 고민했던 따뜻한 음악인


노래의 ‘메시지’를 고민했던 보컬리스트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매력이 부각된 까닭에 종종 간과됐지만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는 종현을 정의하는 키워드 중 하나였다. 날카롭고 섬세한 고음을 지닌 종현은 자신의 목소리의 장단점을 잘 다룰 줄 알았다. ‘헬로’(2010)나 ‘에브리바디’(2013) 같은 경쾌한 곡들에서 종현은 목소리를 얇고 힘있게 뽑아 곡에 청량감을 더했고, ‘데자-부’(2015)나 ‘좋아’(2016)처럼 감각적인 접근이 필요한 미드템포 댄스곡에서는 호흡을 넉넉하게 사용해 듣는 이가 제 목소리의 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모든 보컬 테크닉이 한 곡에 펼쳐진 ‘네온’(2015) 같은 곡을 듣고 있노라면 한 창법에서 다른 창법으로 넘어가는 복잡한 이음매 사이를 현란한 가성으로 가리는 종현의 기량을 실감할 수 있다. 반면 ‘산하엽’(2015)이나 ‘하루의 끝’(2015)처럼 듣는 이를 위로하는 발라드에서 그가 들려주는 음색은 또 다르다. 풍성하게 호흡을 사용하며 동시에 섬세하게 비브라토를 넣어 음절 안에 층을 내는 종현의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가사를 오래 곱씹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모두가 함께 즐겁게 뛰놀며 들을 수 있는 매혹적인 판타지의 세계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위로를 구하는 이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세계까지. 종현이 거둔 음악적 성취는 그가 출중한 보컬리스트들이 모여 매번 다른 콘셉트를 구현해냈던 샤이니라는 팀 안에서도 특출나게 훌륭한 보컬리스트였기에 가능했다.


곡마다 다양한 창법을 구사하며 변신한 건 결국 듣는 이에게 노래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종현이 쓰고 부른 노래의 메시지는, 그가 문화방송 심야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진행하기 시작한 2014년 무렵부터 더 넓은 세계를 품기 시작했다. 늦은 밤 가게 문을 닫고 비로소 한숨 돌리기 시작하며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의 사연, 회사에서 학교에서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음을 토로하는 사연, 하루를 벅차게 보내고 제 안으로 침잠할 무렵 떠오른 상념들을 적어 보낸 사연들 속에서, 종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일상적인 불안과 고민, 보람과 환희에 공감할 기회를 얻었다. “누가 그러더군요. 인생에는 반전은 없고 여전함만 가득하다. 그래서 여전히 오늘 하루가 힘들고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면 그게 정상인 겁니다. 지금 아주 잘 살고 계세요. 연예인이 직업인 저도 특별할 것 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전히 푸른 밤 찾아준 모두와 함께합니다.” 이런 오프닝 멘트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청취자들의 삶을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위로하고자 하는 진심이 없이는 말하기 불가능한 것이었다.


라디오 청취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붙인 소품집 <이야기 Op.1>(2015)에서 그가 보여준 변화는 놀라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내용을 담은 노래 ‘02:34’에서 종현은 그 전에 들려준 적 없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직 집에 가지 마. 우릴 기다리잖아, 대학로. 출석하듯 간 대명거리 앞. 담 넘어 들어갔던 놀이터 학교 옥상. 어디부터 갈까? 어때, 투어 할까? 낙산부터 쭉 훑어 야경 구경할까?” 타이틀 곡 ‘하루의 끝’ 또한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살갗에 닿을 듯한 촉각으로 듣는 이를 위무한다. “네게도 내 어깨가, 뭉뚝한 나의 두 손이, 지친 너의 하루 끝 포근한 위로가 되기를.” 라디오 디제이가 된 이후에도 종현은 여전히 “저 하늘을 곱게 접는, 이 바다를 병에 담는 시간도 편히 걷는 꿈들을 이뤄 난”(샤이니-‘뷰’. 2015) 같은 공감각적인 판타지를 능수능란하게 담아냈지만, 동시에 상대에게 좀더 구체적으로 가닿기 위해 이런 가사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네 얘기 좀 해줘. 항상 나만 말했잖아. 거창할 거 없어. 소소한 어디 거기 맛집 후기나, 그런 것도 좋아 그런 게 특별하잖아”(‘유 앤드 아이’. 2015)


대중비판에 통례적 사과로 응하는

연예계 관습 넘어, 다가가서 대화

연예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진심으로 대했던 청년


노래 속에서 상대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다가가려던 종현의 태도는 세상을 대할 때에도 한결같았다. 종현은 자신의 생일인 4월8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자신과 생일이 같았던 고 김건우, 박지윤 학생의 이름을 호명하며 팬들에게 안산합동분향소 전광판으로 문자를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쉽고 빠른 위로 대신 구체적인 사안을 짚어서 이야기하고 가능하다면 정확하게 위로하고 싶었던 사람.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방송 도중 그가 사용한 ‘뮤즈’라는 단어가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사람들의 비판에도, 종현은 단순하게 ‘생각이 짧아서 말실수를 했다’는 식으로 에둘러 사과하고 상황을 정리하거나 피드백 없이 침묵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형적인 대처법 대신, 종현은 자신이 어디서 어떤 부분을 실수했는지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가르침을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안전한 길을 걷는 대신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사람. 종현은 늘 세상을 대할 때 건성으로 얼버무리는 일 없이 온 마음을 다해 성의를 보였고, 사람들은 그런 그의 진심을 알았기에 종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의 노래를 듣고 밤이면 라디오를 켰다.


그가 세상에 남긴 사랑의 불씨


상대에게 구체적으로 다가가려는 진심은, 사람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의 거울상이었으리라. “내가 인간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람으로 말이에요. 연예인은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캐릭터로 표현되고 이해되는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적어도 나는 인간으로서도 살아가고 있다는 내 나름의 대답 같은 것? 그렇게 혼자 웅변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에스콰이어 코리아>. ‘푸른 밤 종현이었습니다’. 2017년 5월호. 신기주, 정우성 기자) 라디오 디제이 하차를 앞두고 <에스콰이어 코리아>와 한 인터뷰에서, 종현은 위험부담을 안고도 늘 진심으로 다가갔던 건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랬기에 종현을 사랑했다. 있는 힘껏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이였기에. 남은 우리에게 마저 할 수 있는 숙제가 있다면 그가 세상을 대하던 섬세하고도 구체적인 사랑의 불씨를 우리의 삶 속에서 온전히 살려내어 이어가는 것이리라. 그 숙제, 이제 우리가 계속 해볼게요. 수고했어요, 종현씨.


빛나던 사람을 슬픔과 우울로만 기억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우리가 아니라, 그 빛을 삶 속에서 이어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출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8&aid=0002392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