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우아하다. 동시에 퇴폐적이다. 배우 주지훈은 공존하기 어려운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갖춘 드문 남자다. 그리고 올해는 아무래도 그의 해인 것 같다. 여름에 개봉하는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과 <공작>, 그리고 하반기에 찾아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과 영화 <암수살인>까지. 강력한 작품들 속에서 그가 가진 묘한 매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형’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고, ‘형님’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다. 촬영을 하면서 느낀 건데, 주지훈은 후자인 것 같다.

아니다. 형 소리를 들어본 지도 오래됐다. 3년 전 영화 <아수라>를 찍을 때부터 맨날 형들이랑 있고, 현장에서도 계속 막내의 역할을 해온 느낌이다. 이제 서른일곱 인데.(웃음) 많은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신과 함께>의 현장에서도 본의 아니게 분위기 띄우고 고기 굽는 포지션이었던 것 같다.


올여름의 남자로 등극했다. <신과 함께-인과 연>과 <공작>이 연이어 개봉 한다. 우선 개봉이 일주일 빠른 <신과 함께-인과 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신과 함께-죄와 벌>은 성공적인 한국형 판타지로서 인기가 좋았는데, 두 번째 편에서는 무엇을 기대하면 되나?

처음부터 두 편을 함께 찍었는데 배우들 대부분이 1편보다 2편의 대본을 더 좋아했다. 1편에서는 지옥에 대한 묘사나 인물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설명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2편은 드라마가 훨씬 더 세다. 감정적으로 풍부하고 이야기가 깊다. 그러니까 더 재밌을 수밖에. 사실 첫 편에서는 하정우 형과 향기, 내가 연기한 저승 삼차사가 좀 기능적인 역할을 한 부분이 있다. 이번에는 삼차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삼차사가 왜 저승사자가 됐는지, 이 세 명이 왜 함께 다니는지, 어떤 기억을 잃어 버린 건지에 대한 전사가 나오는 거다. 이번 편에 새롭게 등장하는 성주신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것까지는 예고편에도 나오니까 말하자면, 성주신이 우리를 처음에 저승으로 데리고 갔던 차사였던 거다.


성주신을 연기한 배우 마동석과의 케미도 기대된다. 제작보고회에서 마동석과 3초 이상 눈 마주치기 어렵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분이야말로 정말 ‘형님’이지 않나.

그런데 그 덩치 안에 순한 어린 양이 있다. 동동이 형은 정말 너무 귀엽다.



이 시리즈는 계속해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확장성이 좋은 한국 영화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자체가 워낙 방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다른 콘텐츠와 합작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저작권의 문제가 있겠지만 서로 합의가 된다면 외국처럼 다른 작품의 캐릭터들이 이 작품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광해>나 <대립군>의 인물들이 이 영화 안에 들어오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테니까. 소재가 무궁무진한 거다.


확장성의 전제조건은 결국 흥행일 텐데, <신과 함께-죄와 벌>이 흥행에 성공해서 그 가능성도 커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시리즈가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

영화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시켜준 것 같다. 며칠 전에 하정우 형이랑 길을 걷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팬의 입장에서는 <추격자> 같은 영화를 보면서 “야, 영화는 저렇게 찍어야 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영화도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어마어마하게 고민한 작품이라고. 하정우 형처럼 다양한 작품을 하는 사람도 예술영화와 대중영화를 나누고 있지 않더라. 어떤 작품을 굉장히 예술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러한 점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는 이 두 가지를 분리시켜서 생각해온 것 같다.



영화 속에서처럼 저승에서 신들을 만난다면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어느 관문의 재판이 가장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나?

거짓지옥. 영화를 찍으면서도 누가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해서 거짓 없는 삶을 살기란 정말 힘들지 않나. 일단 거짓 미소부터가 그렇다. 아무리 피곤해도 ‘매너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웃게 되니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순수하게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것 같다. 아, 불의지옥도 마음에 걸린다. 불의를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웃음) 사실 환생할 자신이 별로 없다.


나는 나태지옥을 걱정했다.(웃음)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생각보다 되게 열심히 살고 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밖에 안 자면서.


작품의 수만 보아도 나태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 주연 배우로 출연한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하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한 편의 영화의 흥행이 다른 한 편의 영화의 스코어에 영향을 미칠 텐데, 어느 한쪽을 응원할 수도 없는 조금은 묘한 기분일 것 같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장르나 캐릭터 면에서 유사성이 있으면 많이 걱정이 됐을 텐데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있는 작품들이라. 점심에 중식을 먹고 저녁에 한식을 먹는 것처럼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신과 함께>를 보고 나서 혼자서 묵직한 울림이 있는 영화를 보고 싶으면 <공작>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어찌 됐든 한국 관객이 가장 영화관을 많이 찾는 시기에 부려볼 수 있는 욕심인 거다. 사실 모든 한국 영화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감독과 모든 배우들이 피 토하듯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 요즘이라서.


<공작>에 출연한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쉽지 않은 현장이었다고 말하던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북한 군인 역할이다 보니 북한어를 어느 정도로 사용해야 할지 윤종빈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다. 실제로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면 한국 관객들이 자막 없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니까.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1990년대 냉전 시기에, 영화 속 거의 모든 인물들이 속에 있는 말과 밖으로 하는 말을 다르게 한다. 그로 인해 생기는 긴장감이 엄청났다.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데, 그 상황 자체가 살아 움직이면서 연기를 하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듣다 보니 연극 무대 같은 느낌도 든다.

‘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들어왔나?’ 싶었다. 그런데 황정민 형과 조진웅 형, 이성민 형 모두 정통 연극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 판이 살아 꿈틀대니까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그 베테랑들도 한 번에 쭉쭉 가지 못하는 현장이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한 부분도 있다. 윤종빈 감독님도 하루 촬영이 끝나면 완전히 진이 빠져서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눈 하나 잘못 깜빡이면 오케이가 안 나왔는데,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감독님이 “한 번만 다시 가겠습니다.” 했을 때, “왜요?”라는 말이 필요 없는 현장.


<공작>은 칸 영화제에서 먼저 좋은 평가를 받아서 더욱 궁금한 측면도 있다. 처음 가본 칸의 분위기는 어땠나?

우리는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이방인이지 않나. 그런데 영화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넓은 의미의 동료로 환대해주었다. 뜨겁게 타오르기보다는 은은한 온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분위기였고,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으로 온전하게 영화제를 즐긴 것 같다.


그런데 올해 주지훈이 출연하는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될 조선시대 좀비물 <킹덤>이다.

<킹덤>을 통해서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혼날 수도 있지만, 사실 <킹덤>의 대본을 읽으면서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보다는 이야기 자체에서 굉장한 재미를 느꼈다. 캐릭터 위주로 끌고가는 작품이 있고 인물과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같이 굴러 가는 작품이 있다면 <킹덤>은 후자였다. 김은희 작가님이 정말 글을 잘 쓰시는 것 같다.


미드에는 후자의 스타일이 더 많은데, 한국은 여전히 배우의 힘으로 하드 캐리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감정의 진폭이 클 때 연기하는 맛이 나기도 하는데 <킹덤>의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 없이 달렸다. 문자 그대로 달렸다는 거다. 부상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자고 일어나니까 다리에 금이 간 것처럼 피로골절이 왔다. 어찌 됐든 지난 몇 년간 작품 운이 굉장히 좋았건 것 같다. 성격이나 취향 면에서도 잘 맞는 사람들과 작업할 수 있어서 너무나 즐거웠다.


사주에 대운이 들어오는 시기가 아닐까?(웃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조금 더 큰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배우로서 가진 꿈이 뭔가?

하나의 옷을 입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드라마 <궁>으로 잘됐을 때는 3년 동안 거의 교복을 입어야 하는 역할밖에 안 들어왔다. 나의 입장에서는 교복이 <올드보이>의 군만두였다. 그런 상황을 탈피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코미디도 하고, 정말 어두운 이야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지금 <신과 함께>와 <공작>이 공존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관객이 사랑하는 나의 모습 사이의 갭을 좀 줄이고 싶다. 이건 배우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딜레마일 것이다.


퇴폐미와 우아함이 공존하기가 쉽지 않은데 주지훈에게는 그 두 가지 느낌이 다 있다. 카리스마가 있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수다쟁이이고. 배우 정우성이 어떤 인터뷰에서 주지훈을 두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불안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그 형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웃음) 술을 좀 덜 먹이면 덜 위태롭지 않을까? 내가 무서워하는 게 별로 없다. 형들이 불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지점일 것 같다. 술 마시다가 훅 사라져서 걱정을 하곤 하는데 나는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간 거다.(웃음) 원래 술버릇이 집에 가는 거거든.


남자가 가장 우아한 시기는 언제일까?

내가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 술자리에 가면 세트로 보게 되는 사람들이 정우성, 이정재, 하정우 형이다. 이들이 다 40대다 보니까 40대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수라>에 들어가기 전에 처음으로 우성이 형을 만났을 때는 두 시간 동안 혼자서 소주 4병을 마셨다. 너무 떨려서. <비트> 블루레이 DVD를 다 갖고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배우 정우성을 동경했거든. 그런데 나는 그때보다 지금의 형의 모습이 훨씬 멋있는 것 같다. 내 나이를 겪고 훨씬 더 많은 아픔을 견뎠던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조금은 넓어진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속으로 잘난 척할 때도 있는데, 형들에게 ‘쪽팔림’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 되게 좋은 대답을 해준다. 그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배우로서 본인의 황금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선배들이 배우는 40세부터 스타트라인에 서는 거라고 하더라. 배우는 누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긴 싸움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라. 너무 아등바등 하지 마라. 네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열심히는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30대 초반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야? 당장 지금 죽겠는데.’ 싶었다. 근데 이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씩 알 것 같다.


harpersbazaar.co.kr/celebs/주지훈의-두-얼굴/

harpersbazaar.co.kr/celebs/주지훈이란-남자/